중국 현대문학의 흐름을 이끄는 문예계의 쟁점.
혁명문학 논쟁의 과정에서 문예계에 확산된 반 국민당 정서로,상해로 집결한 문인들 사이의 교감등, 진보진영의 통일전선을 추구하던 공산당의 지원으로 좌익작가연맹이 만들어 졌다. 그런 배경위에 혁명문학 진영의 급진적 지식인들과 노신을 대표로 한 기성 문인들이 화해하였으며,좌익작가연맹은 이전까지 개인적 차원이나 소규모 동인 집단 수준에 머물렀던 진보적 문인들의 문예활동은 좌익작가연맹이 만들어지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발전하였다. 반면 이들과 대립하거나 입장을 달리하는 문예계 세력들도 좌익작가연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활동이 폭을 넓혔다. 민족주의문예파등 넓은 의미에는 진보적 진영에 포함되지만 문예가 정치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반대했던 세력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입장에 따라 좌익작가연맹과 대립하고 이념 논쟁을 벌였다.
중국 현대문학 좌익작가연맹의 결성.
좌익작가연맹의 결성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노신과 풍설봉이다. 노신은 혁명문학론을 제기한 창조사와 태양사의 문인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 당시 노신은 진보적인 노선아래 중국 문예계를 단결하게하는 유일한 중진 작가였다. 문예계에서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던 풍설봉이 진보적 문인 전체를 아우르는 문예계의 연합조직을 결성해야 했기에 풍설봉은 노신과 창조사와 태양사를 설득하고 중재했다 결국 노신도 대의를 위해 자신을 공격했던 급진적 문인들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이로서 좌익작가연맹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되게 되었다. 1930년 3월 상해예술대학에서 좌익작가연맹 창립대회가 열렸다. 노신, 전행촌, 하연이 주석단으로 추천되고 풍설봉 심단선,풍내초, 정백기,전한, 장광자, 욱달부 등이 좌익작가연맹을 주도해 나갈 핵심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좌익작가연맹은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공동 목표로 내세웠으며,반봉건적이고 반자산계급적인 무산계급문학을 지향하는 강령도 채택했다. 그리고 산하에 마르크스주의문예이론연구회, 국제문화연구회, 문예대중화연구회 등 3개 부서를 설치하고 좌익작가연맹에 참여한 문학단체와 계파 들이 운영해 오던 문예잡지들을 그대로 좌익작가연맹에서 흡수했다. <척황자> <대중문예> <맹아> <빨치산> <세계문화> <십자로> <북두> <문학월보> 등은 좌익작가연맹으로 흡수되어 발간된 주요 잡지들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좌우의 대립이 치열하고 그러한 이념적 대립의 영향으로 문예계도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좌익작가연맹은 진보적 문예계를 이끄는 조직적 구심점이자 사상적 근거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비록 온전한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좌익 문예계의 문제의식을 한 단계 진전시킨 문예대중화와 같은 활동은 좌익작가연맹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국 현대문학 좌익작가연맹과 문예대중화.
좌익작가연맹의 결성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노신과 풍설봉이다. 노신은 혁명문학론을 제기한 창조사와 태양사의 문인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 당시 노신은 진보적인 노선아래 중국 문예계를 단결하게하는 유일한 중진 작가였다. 문예계에서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던 풍설봉이 진보적 문인 전체를 아우르는 문예계의 연합조직을 결성해야 했기에 풍설봉은 노신과 창조사와 태양사를 설득하고 중재했다 결국 노신도 대의를 위해 자신을 공격했던 급진적 문인들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이로서 좌익작가연맹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되게 되었다. 1930년 3월 상해예술대학에서 좌익작가연맹 창립대회가 열렸다. 노신, 전행촌, 하연이 주석단으로 추천되고 풍설봉 심단선,풍내초, 정백기,전한, 장광자, 욱달부 등이 좌익작가연맹을 주도해 나갈 핵심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좌익작가연맹은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공동 목표로 내세웠으며,반봉건적이고 반자산계급적인 무산계급문학을 지향하는 강령도 채택했다. 그리고 산하에 마르크스주의문예이론연구회, 국제문화연구회, 문예대중화연구회 등 3개 부서를 설치하고 좌익작가연맹에 참여한 문학단체와 계파 들이 운영해 오던 문예잡지들을 그대로 좌익작가연맹에서 흡수했다. <척황자> <대중문예> <맹아> <빨치산> <세계문화> <십자로> <북두> <문학월보> 등은 좌익작가연맹으로 흡수되어 발간된 주요 잡지들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좌우의 대립이 치열하고 그러한 이념적 대립의 영향으로 문예계도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좌익작가연맹은 진보적 문예계를 이끄는 조직적 구심점이자 사상적 근거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비록 온전한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좌익 문예계의 문제의식을 한 단계 진전시킨 문예대중화와 같은 활동은 좌익작가연맹이라는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중국 현대문학 좌익작가연맹과 문예대중화.
중국의 문예계는 문학을 통한 현실참여를 당연한 사회적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좌익작가연맹이 추구한 목표는 문학과 예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민당 정부에 대한 저항과 사상의 자유 쟁취가 이들의 지향하는 바고 억압받는 대중인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 문예활동을 하는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국민당정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정치 상황을 변화시키고 새로운사회를 전설하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욱달부의 <대중문예>에는 마르크스주의 이념의 정당성과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을 대중적으로 고취하기 위한 문학이라는 의미는 들어 있지 않았다.
혁명문학론을 제기한 급진적 좌익문인들은 억압받는 다수의 노동자와 농민 대신 막연한 대중을 문예의 대상으로 설정했다고 욱달부를 비판했다. 한동안 답보상태에 빠져있던 좌익작가연맹의 문예대중화논의는 1931년 말 구추백이 문제를 제시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는 대중문예의 문제등을 통해 문화혁명을 통해 유포된 백화문이 일부 지식계층에게 통용되는 새로운 문언체 일 뿐 진정한 새시대의 언어는 아니라고 역설하고 형식과 체제문제에 관해서는 서구식의 문학형식과 체제를 탈피하고 대안으로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소박한 구두문학. 대중이 애호하는 전통적 민간문학형식 같은 구형식을 주장했다. 구추백은 개인적 감성이나 개성에 입각한 문학보다 사회의 보편적 현실을 묘사하는 (여기서 현실은 공산주의 ) 객관적 문학이 필요하다고 보고 따라서 정치적 효용을 갖춘 현실주의 문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대부분의 작가가 자산계급 으로 지식인 이어서 이론적으로는 문예대중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와 농민의 삶이나 생각을 모른다고 주장하여 구추백의 문예대중화론은 상당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대다수의 노동자와 농민은 노신과 모순의 소설이나 전한과 조우의 연극을 이해하지 못했고 여전히 경극, 지방희, 설서, 민가, 앙가, 같은 민간문학 형식을 즐기고 있었다.
중국 현대문학 문예계의 이념 대립.
당시 문예계에는 좌익작가연맹의 움직임과 궤를 달리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았고 이들은 그 다양한 성향에 따라 좌익작가연맹과대립하거나 논쟁을 벌이면서 문예계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구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좌익작가연맹의 현실정치 지향적인 문예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던 신월파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과 좌익문인들이 좌련을 결성하여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자, 국민당과 우익문인들도 그에 맞서는 문예조직을 만들 것을 계획하였다. 1930년6월에 국민당의 지원으로 상해에서 전봉사가 설립되고 민족주의 문예파가 생겼다. 민족주의 문예파는 좌련을 비판하며 좌경사상을 대신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울 것을 천명하고 민족의식을 이론화시킨 핵심적인 이념으로 삼민주의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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